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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일기 110201 창27장 “희극같은 비극, 비극같은 희극” 본문
말씀일기 110201 창27장 “희극같은 비극, 비극같은 희극”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1)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를 이야기의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모자의 위장 전술에 속아 장자 에서에게 할 축복을 차자 야곱에게 다 해 버린 그, 그런데 별미를 안 먹으면 자식 축복 못하는가? 잘 보지 못한 게 물론 가장 큰 이유가 되겠지만, 이삭의 ‘별미타령’(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도 결국 문제를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에덴 동산의 선악과도, 붉은 팥죽도 오늘 별미 고기도… 결국 먹는 게 또 문제였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지혜로웠던 리브가였지만, 자식 키우는 일 만큼은 누구도 장담 못할 일. 첫째 아들을 편애하는 남편 못지 않게, 둘째를 싸고 도는 엄마 리브가였다. 물론 해산 무렵의 하나님 약속을 기억해서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식 잘 키운 좋은 엄마였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둘째 야곱이 축복받게 하기 위해서 엄마가 할 수 있는 방법이 ‘거짓과 위장’ 전술 밖에는 없었나? 철저히 어미의 지시에 따라 아비를 속이고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챈 “마마보이 야곱”, 하나님의 복은 이렇게 밖에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나?
열심히 사냥하고 별미를 준비해 온 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접하고, “심히 크게 떨”(33)고 있는 아비 이삭에게 이제라도 복을 받기 위해 울며 하소연한다. 사실 에서의 소원은 상식적으로 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34, 38). 아니 더 나아가 무효선언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싶다. 하지만 이삭은 이 점에서 이상하리만치 융통성이 없다.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33).
성경은 잘 이해 못할 이야기 속에, 축복과 관련해서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는 거 같다. 첫째는 ‘말의 위력’이다. 한 번 뱉은 말은 그대로 그 효과를 발한다는 거. 어리석어 보이는 이삭이 무서운 진리를 깨우쳐주고 있는 셈이다. 둘째는 ‘축복의 현장성’이다. 사실 이삭은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에서”라는 이름의 아들을 축복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복은 축복의 현장에서 이삭의 음성을 들었던 야곱에게 현실화된다는 거다.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준 입술로 가족을, 친구를, 성도를, 그리고 이웃을 축복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지 다시금 깨닫는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성경 그 현장에서 그 음성 듣는 자가 결국 복 받는 자 아닌가. 아버지, 날마다 당신의 음성 듣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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