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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일기 110129 창25장 “장자의 명분” 본문
말씀일기 110129 창25장 “장자의 명분”
아브라함은 “백발이 되도록 천수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났다”(8, 공동번역). 그는 많은 아내들을 두었지만, 사라가 묻혀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다(9-10). 이렇듯 아브라함의 시대는 가고, 이삭의 시대가 왔다.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11).
하나님이 복 주신 이삭의 시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두 아들의 장자권 씨름으로 시작된다. 20여 년간 불임이었던 리브가는 남편 이삭의 기도로 임신을 하게 된다(21). 복을 두 배로 주신 것인가? 하나님은 리브가 뱃 속에 아들 쌍둥이를 허락해 주셨다. ‘부창부수’라고, 리브가는 여자의 육감인지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싶어, 하나님의 뜻을 물으러 간다. 그리고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2-23).
잘 아는 이야기. 에서와 야곱이 간발의 차이로 형 아우로 태어나고, 그들은 자기 나름의 개성대로 자라간다. ‘들사람’ 에서와 ‘집사람’ 야곱(27). 하지만 엇갈린 부모의 사랑. 이삭은 에서를,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한다. 세상에 나올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던 야곱은 영원한 둘째(die zweite)로서 보이지 않는 서러움을 안고 산다. 첫째 아들 에서는 당연하듯 장자로 살아가며 이렇다 할 아쉬움이 없다. 사냥 후의 배고픔과 피곤함에 ‘장자의 명분’쯤은 잠시 잊어도 좋았다. 아니 그저 ‘명분’이라면 누가 가져가도 좋았다. 동생이 그 명분 달라고 조르니 깊이 생각할 것 없이 주었다. 참 성격 좋은 에서다.
나도 장손이며 맏아들이다. 게다가 한국의 장로교 소위 장자 교단의 목사다. 그래서 은근히 에서에게 마음이 가는 걸까. 에서가 사람이 커 보이고, 장자의 명분에 집착하는 그래서 얕은 꾀를 부리고 있는 야곱은 왠지 소인배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 이 소인배, 이 작은 자, 이 둘째를 주목하고 있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는 성경에 도도히 흐르는 ‘둘째 사상’을 잘 보여주는 거 아닌가 하는 거다. 이스마엘이 종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사실 이삭도 아브라함의 둘째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도 둘째 아담이시지 않겠나. 둘째는 역으로 장자의 명분이 그렇게 중요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엄연한 장자 중심 사회였다. 아브라함도 수 많은 아들들이 있었지만, 다른 아들들에게는 일부 선물을 주고는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5)던 것이다.
말씀의 핵심은 이것 아닐까? 장자들은 장자로서 정신차리고 살라는 것이고, 차자들은 차자라 한탄하지 말고 장자 명분, 장자의식 가지고 살아가라고. 오늘 너나 나에게 모두 육신의 장자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장자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단 말씀 아닌가.
아버지 하나님, 이 자식이 무책임한 아들 되지 않게 하시고, 또한 욕심으로 가득한 아들도 되지 말게 하소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명분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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