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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일기 120306 고전4장 ‘교주와 사도의 차이’ 본문
얼핏 보면 잘 모르지만, 조금 들여다 보면 바울은 무슨 이단 교주같이 보일 수도 있다. 왜냐 하면 몇 개의 파당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 사람들을 부드러운 듯 하나 엄하게 훈계하던 그가 이 문제 해결의 결론 부분에 와서는 결국 수 많은 스승이 있어도 아버지는 여럿 있을 수 없다 하며 자신이 고린도 성도들을 낳은 아버지이니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고 있으니(14-16), 마치 자신을 중심으로 뭉치라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분열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기가 디모데를 보낸 것인데, 그 디모데는 자신이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17)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이것도 자칫 이단 느낌일 수 있다.
사실 앞장에서도,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와 동급으로 놓고 이야기 하는 듯 보이지만, 자신이 심은 자라는 사실 즉 복음의 기초를 놓은 자라는 사실에 은근 방점이 들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만약 내가 바울 입장이었다면, 파당 그룹 이름을 언급할 때도 ‘바울파’를 뒷 순서로 배열할 것 같은데, 왠지 바울이 직접 적은 편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로 매번 바울파 혹은 바울이라는 이름이 먼저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바울이 이단 교주가 되지 않은 중요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그 시점까지도 여전히 복음 때문에 현장에서 갖은 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객관적으로 볼 때,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다’, ‘내가 아버지다’ ‘나를 본 받도록 하라’는 표현들은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보다 더 겸손하면서도 힘 있는 다른 표현들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단 교주로 전락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복음의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 위에 온전히 서 있기 때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여전히 현장에서 복음을 위해 고난 받고 있었던 그의 치열한 삶(9-13) 때문이리라.
배부른 교주의 오만함이 아닌, 고난 받는 사도의 당당함이 부럽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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