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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일기 120125 롬6장 '그럴 수 없느니라' 본문
결국 오늘부터는 가정 경건회 시간에 새번역으로 읽게 되었다. 맨 처음에 새번역으로 시작했다가 개역개정으로 갔다가 다시 새번역으로 온 것인데, 조금 가다가 또 개역개정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 아닌지…
바울의 권유형, 특히 9, 11, 13절의 ‘앎이로라, 여길지어다, 드리라’는 동사로 끝나는 문장들은, 주어를 1인칭으로 바꾸고 시제를 현재형으로 바꾸어 읽을 때 더욱 힘 있고,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은혜 안에 거한다고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노력을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어내는 일이 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1-2a). 나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그의 부활하심과 같이 새 생명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나는 “사망이 다시는 그(나)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안다(9). 나는 나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긴다 (11). 그러므로 나는 나의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고…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린다(13).
물론 이렇게 말씀을 읽는 것은 자주 죄와 허물로 범벅이 되는 나의 삶의 현실과 충돌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나의 선언, 나의 고백은 허황된 것인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물론 나는 죄의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고, 흙탕물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다시 “그럴 수 없느니라” 하는 나의 선언은 반드시 필요하다. “멀찍이 예수를 따라가던”(마26:58) 베드로는 결국 예고하신 대로 주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된다. ‘현재형 선언’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르려 하던 베드로의 이 나약한 자세를 지양하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좇아”(=찰싹 달라붙어, 룻1:14) 따라갔던 룻처럼 살겠다는 고백이다.
죽어 관 속에 들어가면 혹 모를까, 죄도 유혹도 아무 문제도 없는 곳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죄와 유혹을 뚫고 가는 것이고, 걸려 넘어졌다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주님께 가까이 있을 때, 주님과 함께 갈 때 가능한 것이다. 바울도 이런 문제로 고민이 왜 없었겠는가, 그래서일까?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구체적인 조언을 해 준다. 첫째, 유혹은 피하는 게 상책이고, 둘째, 뜻 있는 자들과 함께 해야 하고, 셋째, 선한 목표를 따라가라고.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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