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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일기 110210 창35장 “내 환난 날에”

유럽의 바람 2011. 2. 11. 04:23

말씀일기 110210   35     “내 환난 날에”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이름이 바뀌고, 형과도 화해했지만, 야곱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딸이 강간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고, 이에 분노한 아들들이 복수심에 대 학살극을 벌였다. 삶의 위기가 또 찾아왔다. 그래도 야곱이 복된 것은 그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한 것이다. 자신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1), 돌베개 머리맡에 나타나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며 바로 그 자리, 벧엘로 올라간다.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3).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찬송가 70). 하나님은 당신께 피하는 야곱을 철저히 보호해 주신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5). 야곱은 벧엘에서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다시 붙인다. 엘벧엘(7)이라고. 야곱이 위대한 것은 이처럼 그의 삶이 흘러가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이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것 아닐까. 그것도 위기 가운데에서 말이다. 야곱은 다시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베들레헴)”(16)을 향해 가는 길에,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난산 끝에 베냐민을 낳고 죽는 아픔을 겪는다. 위기는 거듭된다.

 

그런데, 솔직히 나에게는 성경 인물에 관한 선호도가 분명히 있다. 성경에서 좋아하는 인물 하면 구약에서는 모세, 신약에서는 베드로. 바로 나온다.  상대적으로 조금 껄끄러운 인물을 말하라면 신약에서는 바울, 구약에서는 야곱을 꼽을 것 같다. 왜일까? 좋든 나쁘든 바울의 고집스러움이 내게는 부담이었을까?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라고 노래하는 한 복음송이 그대로 보여주는 한국교회의 모습처럼, 한국의 기독교는 왠지 예수교라기 보다는 바울 예수교같다는 생각 때문일까?

 

바울은 그렇다 치고, 내가 은근히 야곱을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험악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일까? 자기밖에 모르는 욕심 많은 한 기독인이 자신은 야곱이 너무 좋다고 떠들어대던 모습을 보며, 마음이 개운치 않았던 옛날 기억 때문일까? 야곱을 편들어주시고 신실하게 그 약속을 지켜가시는 하나님은 바로 그 약자를 향한 편애를 통해 진정한 공평을 이루어가시는 만유의 하나님, 만민의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가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욕심쟁이들만의 전유물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였을까? 야곱이든 바울이든 그들의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내가 저들 인간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찬송가 415). 주님, 나의 피난처 나의 안식처, 주님만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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