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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하사가 준 군화 본문
<추억의 지도자>
김 하사가 준 군화
강원도 산골 군대 생활을 통해 만났던 김(이름이 가물가물한데 경북대 법대를 다니다 온 형제로 기억된다) 하사를 잊을 수가 없다. 그와의 만남의 기간은 불과 두 달 남짓. 나는 당시 아직도 똥오줌 못 가리는 이등병이었다. 힘겨운 훈련과 고된 작업이 주된 사역이었던 부대에 뺀지리(서울 출신)에다 얼굴 하얗고 가방끈 긴(대학 다니다 온 소위 ‘학삐리’로 머리만 쓸 줄 알지 몸이 못 따라 준다는 뜻이다) 나는 반가운 졸병이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행군하는 일 외에는 내가 생각해도 거의 고문관에 가까웠다. 군 생활을 지옥같이 여기며 힘에 겨워하는 나를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기던 김 하사는 때로 교육훈련이 끝나고 해가 저물 때면 나를 따로 불러내어 위로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때 PX에서 그와 함께 먹던 비스켓 ‘다이제스티브’와 진주햄 소시지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견뎌야 해”, “너는 해 낼 꺼야, 반드시”, 그리고 “슬플 때 고통스러울 때도 웃을 수 있는 진정한 승자가 되자”며, “그렇게 똥 씹은 표정 하지 말고 밝게 웃어라” 했던 그의 사랑의 격려와 충고는 당시 내게는 천사의 메시지였다. 특히 “개 같은 군대 생활이었지만, 내 인생과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민족 역사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볼 수 있어서 군 생활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는 그의 회고 담긴 격려. 그것은 군 생활뿐만 아니라 이후 나의 인생에 있어서 현미경을 보아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망원경을 보아야 할 때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 하늘의 소리였다. 한 번은 내가 군화를 잃어버려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 때 그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가져다 준 군화. 모두들 제대 후 예비군 교육받을 때를 위해 소위 A급(새 것을 말함) 군화를 챙겨 나가기에 바빴던 그 때, 그가 벗어 준 군화는 그대로 ‘A급’ 사랑과 용기, 그리고 무욕의 신발이었다. 마치 모세가 호렙산에서 벗었던 신발처럼. 그가 벗어준 신발을 신고 나는 열심히 강원도 산골을 누비다 마침내 C급(제일 낡은)군화를 챙겨 신고 ‘영광의’ 제대를 맞게 되었다. 김 하사 그는 내게 작지만 큰 지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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