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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일기 110811 민6장 “율법 속의 복음” 본문
성경 안에 신 구약이 따로 있는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하면 구약 안에 신약이 들어 있고 신약 안에 또한 구약이 들어 있다. 내가 보기에 민6장은 그것을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민6장의 전체 27절 중 대부분에 해당하는 21절까지 내용은 ‘나실인’에 관한 규례이다. 나실인은 자신이 구별하여 헌신하기로 한 기간 동안에는 첫째, 포도주를 비롯하여 포도랑 관련된 그 무엇도 먹지 말아야 했다(3-4). 둘째, 머리털을 자르지 말아야 했다(5). 셋째,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했다(6-7).
오늘 날 성도들은 한 동안이 아니라 평생을 ‘나실인’으로 헌신해야 하는 사람들 아닐까? 아니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은 분명 그렇다. 그런데 이 나실인 규정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으리라. 나는 포도주도 마시고 건포도도 잘 먹는다. 한 때 머리를 많이 기른 적도 있지만 목사가 된 뒤로는 오히려 그 반대로 자주 머리를 자른다. 목사이기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자주 시체를 가까이 했다. 요즈음은 그런 일이 잘 없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시신을 닦아주는 일도 많이 했다.
나실인 규정은 얼핏 인간이 율법적 수행과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라면, 이건 오히려 더 쉬운 일이 아닐까? 인간이 정해 놓은 법과 규칙을 그저 잘 지키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말이다. 나는 오늘 말씀을 다시 읽으며 나실인 법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새기게 된다. 이 법은 인간에게 고행을 강요하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는 존재로 살아가라는 거룩한 명령을 들려준다. 생명을 경외하여,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말고, 죽음의 세력과는 멀리하라는 하나님의 음성, 이것은 바로 은혜이고 복음이다. 생명의 주인이신 그 분께서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22-27까지 나오는 소위 ‘아론의 축복 기도’가 결코 뜬금 없어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면 하나님은 그 빈 바대로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다(27). 오늘 나와 성도들은 물론 특별한 헌신을 다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부터 비롯되고 그것과 함께 간다. 나는 우리 교우들이 ‘생명의 하나님’을 드러내며 살아가도록 축복 또 축복할 것이다.
이 참에, 간단 명료하고도 생생한 루터 번역 ‘아론의 축복’을 외어 본다.
Der Herr segne dich und behüte dich,
der Herr lasse sein Angesicht leuchten über dir und sei dir gnädig,
der Herr hebe sein Angesicht über dich und gebe dir Frieden(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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