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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일기 110301 마1장 “거룩한 계보” 본문
말씀일기 110301 마1장 “거룩한 계보”
“신화와 족보에 끝없이 몰두하지 말”(딤전1:4)라고 했는데, 마태복음은 처음부터 너무 족보에 몰두하고 있는 것 아닌가? 왜 그럴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를 강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작부터도 아주 분명하지 않은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1). 그런데 이 ‘거룩한 계보’는 결코 거룩하지가 않다. 질서가 분명한 계보도 아니요, 신성한 계보도 아니다. 장자로만 이어져 내려간 확실한 계보도 아니요, 어찌 보면 일관성 없는 제멋대로의 계보인데, 그나마 거룩하지도 신성하지도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들을 겨냥해 짜맞춰진 듯한 이 계보가 이방인인 나를 살려준다. 나는 오늘 특히 이 계보 중에 등장하는 여인들에게 시선을 집중하게 된다. 기미년 3월1일 아우내 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유관순 누나가 생각나서인지 더욱 그렇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밧세바), 마리아, 이 여인들은 모두 시쳇말로 ‘팔자가 센’ 여인들이었다. 마리아는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여인들도 모두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동침하여야 했던 다말, 기생으로 잔뼈가 굵었던 라합, 남편을 일찍 하늘 나라로 보내고 과부로 힘겨운 날들을 지내다가 새 남편을 얻은 룻, 남편이 있음에도 권력의 정점인 왕의 눈에 띄어 남편의 죽음마저 교사한 왕의 부인으로 살아야 했던 밧세바, 모두가 마치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부르고 싶은 모진 인생들을 살았다. 그런데, 결코 거룩하다 말하기 힘든 이 여인들을 통해 ‘거룩한 계보’는 이어졌다.
일반 족보로도 나는 별반 자랑할 게 없고, 특히 신앙 족보로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소위 ‘상놈’ 출신이다. 내 살아온 삶이 거룩하다 하기도 어렵고, 고상하고 신비하다 하기는 더욱 힘들다. 하지만 감히 믿기는, 족보 근처에도 오기 힘들었던 여인들의 이름이 거룩한 계보에 올랐듯이, 내 인생 내 이름 석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잇는 ‘믿음의 사람들 계보’에 분명히 기록되리라.
주여, 지난 계보를 자랑하기 보다는, 내가 이어갈 믿음의 계보를 자랑하게 하소서. 갖지 못한 과거를 아쉬워하기 보다는, 장차 소유하게 될 미래를 감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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