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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일기 140207 사63장 '이제 어디 계시냐' 본문
말씀일기 140207 사63장 '이제 어디 계시냐'
원수의 손에 죽어가는 나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워 결국 나를 구해 준 사람을 향해, 너는 왜 손에 피를 묻혔느냐, 왜 옷이 그렇게 붉게 물들었느냐 따져 물을 수는 없다(1-2).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워주신 하나님을 향해 '싸움을 좋아하는 자'라고 불평할 수 없다. 나를 위해 원수를 피 흘리게 하신 것을 탓할 수 없듯이, 또한 나 때문에 원수에 의해 피 흘리신 것도 탓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나를 향한 사랑이기 때문이니, 그저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뿐이다.
오늘 말씀 사63장처럼 뮤지컬 연극 효과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도 흔치 않을 것이다. 1-6절까지는, 홀로 승리를 쟁취하시고 돌아오는 하나님의 모습이, 선혈이 낭자한 붉은 옷을 입고 개선하여 넓은 광장에 서서 사자가 포효하듯 승전 자축 연설을 아리아로 쏟아내는 장수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7-14절 까지는 이 승리의 하나님이 오늘에만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이스라엘 집에 크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모세의 때에, 그러니까 짧게 보면 700여 년 전, 길게 보면 900여 년 전이라 할 수 있는, 역사 속에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묘사된다. 1-6절 까지가 질문하는 사람들을 향해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아리아였다면, 7-14절 까지는 8절에 잠깐 울리는 하나님의 아리아를 배경으로 10절까지 마치 변사와 같은 선지자의 아리아가, 11-14까지는 백성들의 합창이 울려 퍼진다.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11)는 백성들의 합창(아우성)의 테마는 그 승리와 구원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계시냐?"(11, 13)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백성들의 합창에 붙여 간절히 올려 드리는 선지자의 호소도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15) 하는 것이다.
그렇다. 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선지자가 있고(16), "어찌하여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돌아오시옵소서"(17) 기도하는 선지자가 있어, 이스라엘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백성들의 지금 생활이 아무리 개판이어도, 그 때-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며, 도대체 지금 어디 가 계시는 거냐고 불평하고 호소하고 따져 묻고 있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이다.
점잖게 하나님을 연구하며 객관화하고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 지금 어디 계시나이까?' 원망이든 불평이든 부르짖을 수만 있다면 도리어 그 편이 훨씬 희망 쪽에 가까이 가 있다. 설사 조상들이 다 외면하고(16), 세상이 다 손가락질 한다 해도. 왜?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 죽음에 내어 주시기까지 하면서라도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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