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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일기 120323 룻3장 ‘거기 누우라’ 본문
룻이 시어머니를 붙좇아 유다 땅으로 온 일은 매우 소중한 일이요, 밭으로 나가 부지런히 이삭이라도 주웠던 일도 소중한 일이다. 룻에게 그 이상 소중한 또 하나의 일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명에 따라 보아스 발치에 눕는 일이었다. 그것은 룻에게 안식과 복을 가져다 줄(1)뿐만 아니라 나오미에게도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와 함께 돌아왔고(1장), 시어머니를 위해 밭에서 땀 흘렸던(2장), 룻은 이제 시어머니의 명에 따라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3) 때를 기다리다가 보아스의 발치에 눕는다(7). 그런데 그녀는 잠결에 자신을 발견한 보아스를 향해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9)라고 까지 하니, 설사 은유적인 표현이라 하더라도, 보통 로맨스가 아니다.
그럼에도, 보아스의 눈에는 룻이 천박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녀의 현숙함을 칭찬한다(10-11). 벌써 사랑에 빠져 눈꺼풀에 뭐가 씌어서 만은 아니다. 그는 제대로 보고 있다. 짐작컨대, 보아스는 젊은 여인이 아무리 먹기 살기 힘들다 하여도 자기 몸을 맡기기에는 너무 늙은 사람인 것 같다. 보통 젊은 여자들, 더군다나 ‘아름다운’(룻의 이름 뜻) 여인이라면 당연히 ‘젊고 돈 많은 남자’를 찾아 갔을 것이다. 그런데 룻이 그에게 왔으니, 이제 ‘힘 있는 자’ 보아스는 그녀를 위해 쉬지 않고 자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18).
오늘 날, 현대인들이 하나님 곁에 가는 일도 이와 마찬 가지로, 내 젊음 다 팽개치고 돈이나 조금 있는 늙다리 곁으로 가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하긴 요즘은 ‘돈 많고 명 짧은 이가 최고’라는 말까지 있는 말세지만). 인간은 기왕이면 돈만 아니라 힘과 젊음, 화려함이 있는 그 누구를 꼬셔서 자신 곁에 눕게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설사 늙고 힘 없어 보이고 얼핏 답답해 보인다 할지라도, 보아스에게 가야 한다. 오직 나의 보아스, 주님께로 가야 한다. 내가 주님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분의 발치로 나아가야 한다. 잘 단장하고 가야 한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 분의 발치에라도 누워야 한다(7, 8, 13, 14). 신약판 룻, 마리아처럼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눅10:39) 들어야 한다. 그렇게 그 분의 품에 안겨야 한다. “책임”(13)은 그 분께서 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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