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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일기 111206 행15장 '회의, 그리고 그 너머'

유럽의 바람 2011. 12. 7. 07:33

 

 

사람들은 회의 자체를, 특히 오랜 시간의 회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떤 목회자는 자기가 섬기는 교회는 회의를 자주 하지 않는다고, 간혹 하더라도 아주 짧은 시간에 끝난다고 자랑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예루살렘 회의는 오랜 시간 서로 격론한 회의였으니 불량 회의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이 회의가 교회사 속에 가장 중요하고도 멋진 회의였다.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하느냐 혹은 받을 필요가 있느냐, 모세의 법대로(1)냐 아니면 주 예수의 은혜로(11)냐 하는, 초기 기독교의 선교 현장의 핵심 쟁점을 놓고 교회는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2)을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7) ‘은혜로 구원 얻는다는 결론에 합의하게 된다. 먼저는 회의의 주제가 중요했고, 은혜로운 합의 과정이 또한 중요했다. 물론 이 합의 도출 과정에 역시 두 사람, 베드로와 야고보의 협력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나는 예루살렘 회의 장면을 그려보며 마음으로 큰 박수를 보내다가도 작금의 한국 교회 특히 한기총등의 일그러진 모습 들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예루살렘 회의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자신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친 것이라면, 요즘 한기총 등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못을 또 박고,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꼴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한국의 기독교, 특히 개신교 그 중에서도 다수를 차지하는 장로교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에 남는 위대한 결정을 하는 총회들이 되어야 할 텐데정말이지 그래야 될 텐데

 

그런데, 회의로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명예와 이익, 파당만이 판치고 회의 자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국 개신교회를 생각하면 이건 더 답답한 이야기지만, 분명 좋은 회의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분명 내 눈에는 행15장이 그렇게 읽힌다. 예루살렘 회의는 멋지게 마무리 되었고, 바나바와 바울은 소위 총회의 좋은 결과를 안디옥 교회에 전할 수 있었고, 이 후 안디옥 교회만이 아니라 이방인 선교 사역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의 동행 문제로(37)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39)게 되었다. 신학과 교리 문제 등은 회의를 통해 합의될 수 있다 해도, 내가 특정한 한 사람과 함께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훨씬 합의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바울과 바나바가 보여 준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근본 한계인가? 그래도 결국 또 둘씩 둘씩-바나바와 마가 요한이 한 팀, 바울과 실라가 한 팀- 흩어져 간 걸 보면 분명 이 중요하긴 한 모양이고.

 

내 가슴에 대고 이런 구호를 외쳐 본다. “회의다운 회의, 그리고 회의보다 더 멋진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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