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바람 하늘 바람

[스크랩] 읽을 수록 공허해지는 자기계발책들... 본문

글 글 글

[스크랩] 읽을 수록 공허해지는 자기계발책들...

유럽의 바람 2009. 10. 31. 01:30

 

자기 계발서의 자기 계발이 절실하다

 

 

 

 


  프리랜서가 된 후 부터 출판 제의가 적잖게 들어왔다. 20대 후반에 무슨 책이냐며, 몇 차례 점잖게 거절했다. 출판사들의 반론이 당혹스러웠다. 비교적 젊은 필자들이 쓴 자기 계발서가 요즘 대세란다. 아닌 게 아니라 출판계에는 젊은 독자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라는 흐름이 형성돼 있었다.

 

  간신히 책을 쓰기로 결심을 하자마자, 이번에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그간 쓴 기사나 블로그 내용으로 채우기는 민망했다. 어설픈 내용을 다루기도 낯부끄러웠다. 그건 책을 한 번 찍어내는 데 사용되는 2백여그루(5천권 인쇄시)의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내 20대에 대한 솔직한 반추와 더불어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얘기를 쓰기로 했다. 넉달여의 치열한 원고와 퇴고 작업을 끝내자, 출판계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너무 길고 진지하다는 평이었다. 젊은 독자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의 성공 방정식에 어긋난다는 지적이었다.

 

  그렇다면 기존의 성공 방정식은 어떤 것일까? 젊은 자기 계발서를 펴내온 한 출판사 대표가 재치 있게 요약해줬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책을 덮고 나서는 한결 같은 반응을 보여야 한다. 유치하다거나, 내가 다 아는 내용이라는. 도대체 이런 평가를 받는 책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일까? 그것은 전적으로 젊은 독자들의 몫이다. 그들은 주변의 또래에게 그 책을 사거나 읽은 사실을 자랑하고 다닌다. 짧고 단순한 내용일수록 책의 내용을 전파하기는 쉽다. 책 구입이나 독서 사실을 자랑하기에 길고 진지한 책은 왠지 적절치가 않다. 가벼운 자기 계발서는 일단 입소문을 타면 무섭게 팔려나가기 시작한다. 자기 계발서를 사는 직장인들의 심리는 비슷하다. 주변 아이들에 견주어 비슷하게 학원을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학부모의 심정과 흡사하다. 시중에 회자되는 자기 계발서를 안 읽으면 괜히 남들에 비해 뒤쳐지는 느낌이 든다. 책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지만, 자기 계발서는 유독 더 그렇다. 그래서 가볍고 단순한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다.

 

 

 

 

  오로지 내 책을 교정하는 데 참조하자는 생각에서 국내에서 출간된 젊은 자기 계발서들을 들여다봤다. 두 가지 부류가 가장 눈에 띄었다. 성공에 대한 직접적인 조언서와 성공에 대한 간접적 암시를 제공하는 우화집이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종선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갤리온, 2009년)가 전자의 대표 격이다. 이 작가는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성공의 필수 요소로 사람을 꼽는다. 20년간 300만명을 만났다고 자평하는 이답게, 인간관계를 통해 인생을 풍요롭게 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젊은 사회인들을 겨냥한 책답게, 금과옥조로 삼을 만한 구절들이 많았다.

 

그런데 공허하게 느껴지는 대목들도 적지 않았다. 이 책뿐만이 아니라 이런 부류의 책들
이 대부분 그랬다. 이 책의 한 구절로, 톨스토이를 재인용 한 대목을 보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하라는 충고로는 멋진 말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당장
공감하기만은 어려운 얘기다. 당신 주변의 많은 사람들, 배우자나 친구, 직장 동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늘 그럴 수만은 없기에 원칙이나 요령이 필요하다.
자기 계발서를 읽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특히 직장이란 곳은 무작정 깊고 넓은 인간관계가
최선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곳이다. 당신 곁에 있는 직장 동료를 위해 최선을 다
했지만, 그로부터 배신감을 느꼈던 경험은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두 번째 부류인 우화집 형태의 자기 계발서는 국내 출판계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장르다. 국내 필자들은 스펜서 존스의 연작들(<누가 내 치즈를 옮겼나?>, <행복>, <선물>, <멘토> 등)과 마시멜로 시리즈가 잇달아 국내 시장을 강타한 후 본격적으로 이 장르에 뛰어들었다. 한상복의 <배려>(위즈덤하우스, 2006년)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조신영의 <경청>(위즈덤하우스, 2007년)과 <쿠션>(비전과리더십, 2008년) 열풍이 거세다. 우화집은 젊은 자기 계발서의 성공 방정식을 곧이곧대로 따른다. 짧으며, 유치하리만치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스토리텔링을 두고 실제로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된다고 하기에는 쓴 사람이나 읽는 사람 피차 민망해진다. 자기 계발 서적 시장에 유독 만연한 밴드왜건(bandwagon) 현상(퍼레이드에서 악대차가 앞서면 많은 인파가 뒤따르는 것처럼, 특정한 상품이 인기를 끌고 나면 사람들이 따라서 구입하는 현상)의 덕을 보고 있을 따름이다.

 

  자기 계발서라는 것이 원래 유치하고 공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는 독자들도 많다. 대단한 지식이나 정보, 그리고 통찰력을 얻으려고 자기 계발서를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독자 자신도 아는 얘기를 한 번 확인해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일정 부분은 맞는 얘기다. 특히 구미 자기 계발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이른바 긍정적 사고류의 책이 그렇다. 이런 책들은 획기적이거나 참신한 내용을 다루지는 않는다. 누구나 짐작할 만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래도 설득력 있는 사례나 논거를 제시한다. 국내 출판계에서도 돌풍을 일으킨 <시크릿>(론다 번, 살림비즈, 2007년)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유형의 자기 계발서를 읽고 있노라면, 자신이 변화하거나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것이 이런 부류의 책이 가진 최대 미덕이다.

 

 

 

 

  최근 구미 자기 계발서의 주축은 역시 성공 경험칙을 다룬 서적들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예를 통해서 성공 법칙을 일반화시키는 부류다. 이런 책들의 효용성을 둘러싸고는 이미 구미 각국에서도 많은 논란이 이어져 왔다. 성공의 다양한 방식들을 일반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아니 가능하기라도 한 것일까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여전히 주류 학계에서는 이런 식의 접근법을 주먹구구식으로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는 매력적이다. 성공한 사람을 쫓아 하면 성공하기가 쉬워진다는 것이 이성적 판단을 떠나 독자들의 본능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설령 성공에 가까워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기분 좋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성공의 경험칙들을 다룬 책들은 늘 인기를 끈다. 2003년 출판돼 지금껏 잘 팔리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김영사)이라든가, 최근 인기작인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김영사, 2009년) 등이 그런 예다. 물론 이런 책들 역시 유치하고 공허한 면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설득력 있고, 흥미진진하다. 적어도 우리 자기 계발서들이 갖고 있는 터무니없이 순진무구한 면은 적다.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우리 자기 계발서들이 정작 자기 계발을 촉구해야 할 대상은 독자 이전에 자신들인 셈이다.

 

  이런 국내 자기 계발서 시장의 분석 결과가 내 책에 어떻게 반영됐느냐고? 구미 자기 계발서의 풍부한 예와 설득력은 배우려고 노력했다. 지나치게 순진하고 진부한 주장은 다루지 않으려고 애썼다. 출판계의 지적을 받아들여 분량은 100쪽 이상 줄였다. 그러나 너무 진지하다는 지적을 받은 내용만큼은 손대기가 싫었다. 자기 계발을 하자면서 남들 따라 할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출처 : Lifestyle Report
글쓴이 : 이여영 원글보기
메모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