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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 미카엘 교회 (독일 함부르크) 본문
성 미카엘 교회
함부르크에서 가장 상징적은 교회로 멀리 엘베강에서도 보인다. 1751-1762년에 건축가 소닌(Sonnin)에 의해 세워진 이 교회는 북부 독일인들의 가장 중요한 바로크 건물이며 함부르크의 상징이다. '미헬'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성 미카엘교회는 높이가 132미터로 탑의 전망대에 올라 가면, 함부르크 도심의 알스터 호수, 엘베강, 함부르크 항구 등이 한눈에 조망되어 진다. 성당 수용인원은 2,500명 정도이다
함부르크(Hamburg)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두번째로 큰 산업도시이며 인구 300만 이상의 경제권 중심 도시이다. 그럼에도 광대한 공원과 가로수길, 농경지등 독일의 "가장 푸른 도시"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함부르크는 독일의 가장 중요한 항구이자 해외무역 및 교통의 중심지이다. 항구의 산업지역에는 조선소, 정유소, 그리고 해외로부터 수입된 원료의 가공처리 공장이 함께 있다. 함부르크는 1189년 관세 및 경제특권을 부여받으며 부역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 후 한자동맹의 첫 구성원의 하나로 북해와 발트해 사이의 중요한 화물항으로 성장하였다. 1460년, 1510년 제국도시로 승격되어 그 자치권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1842년 화재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중세의 대무역 도시라는 과거의 흔적은 대부분 소실되어 현대적인 모습을 많이 가지고 이있다. 함부르크는 독일 최초로 상설 오페라 하우스가 세워졌으며 헨델(1685~1759)에 그의 첫 작품인 "알미라"를 이곳 무대에 올렸다. 브람스는 함부르크 출신이다. 베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위해서 특별히 세운 극장 "신 플로라"가 세워지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함부르크는 뮤지컬 공연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와 영국의 영향으로 함부르크는 독일 계몽주의의 요람이었다. 1767년 독일 국립극장이 여기에 설립되었으며, 이 기관은 고트프리트 에프라임 레싱(1767-1769)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고("함부르크 희곡론:Hambugischer Dramturgie"), 특히 세익스피어 작품 공연을 그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민나 폰 바른하임"(레싱)과 "돈 카를로스"(실러)는 여기서 초연되었다. 프레드릭 고트리프 클로프슈토크(1724-1803)와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1740-1815)가 당시의 함부르크의 "문학 기관"이었다. 19세기의 반동 시대에는 함부르크의 율리우스 캄페가 하인리히 하이네의 작품과 "젊은 독일"의 다른 "민중 선동적인" 작가들 작품을 출판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에 미군이 입성하자 미군사이에서 인스턴트 식사방법이었던 빵 사이에 햄을 끼워 먹는 방식이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유행하였다. Hamburg의 영어식 발음이 햄버그였으므로 그 음식을 햄버그라고 불렀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게 된 것이다
2006년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함부르크 축구 경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