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맹글

내가 아이스크림을 잘 못 먹는 이유

유럽의 바람 2007. 5. 4. 22:57
 

친구에게,


국민학교 1학년 때 우리 반 여자 반장,

그 이름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한 재준!

그녀는 반장, 나는 그녀가 앉은 줄의 반장. 즉 분단장.

그나마도 키가 커서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얻게 된 직위.

하여튼 그 아이는 가끔씩 도라지 타령을 하면서 춤을 추었는데, 그야말로 학 중의 학이라.

어린 난 어느 새 그 아이에게 폭 빠지고 말았지.

어느 추운 겨울 날, 나는 딱 한 시간 그 아이의 임시 짝꿍이 될 수 있었지.

그 아이의 남자짝꿍 애가 난로 주변 자리라 너무 덥다고 선생님께 호소한 것.

아, 그 때. 선생님은 맨 뒷 줄 북극과도 같은 곳에 늘 앉아있던 나와 자리를 바꿔 앉으라고 말씀하셨지. 난 내 자리에서 책을 챙겨 난롯가 그 여반장 아이 옆으로 가는 순간부터 열병에 걸려버린거야. 정말 난로 주변은 뜨겁더군. 한 시간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은 온 몸에 땀을 흘리고 있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 주셨지. 그 때 그 한 시간 아!  그렇게 한 학년이 저물고 이제는 안녕인가 했더니 그 아이와 난 2학년 때도 또 같은 반이 된 거야.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아님 장난의 운명인가?


2학년 어느 때였을 거야. 미술 시간이었지. 각자 자기 부모를 그려보는 시간이었지. 1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의 그림이 선생님께 뽑혀서 앞 칠판에 걸리게 되었지. 물론 내 그림은 거기 없었어. 그런데 이상한 그림이 하나 있었어. 다들 얼굴을 동그랗게 그렸는데, 어떤 아이 하나가 도화지 전체를 세로로 세워서 하나의 얼굴로 그린거야. 눈썹도 일자로 진하게 그려 놓고.... 마치 무슨 깡통 얼굴 같기도 하고

그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여자 반장애였어(물론 얘는 2학년 때도 연속 반장이었고, 물론 나도 연속 줄반장이었지). 선생님은 그 아이한테 아버지는 얼굴이 네모나시냐고 물었지. 그 아이의 대답은, “아니에요. 우리 아버지는 무서우신 분이세요. 그래서 네모나게 그렸어요.”  아! 그 때 나는 완전 가버렸다. 순간 내 혼은 내 맘에서 떠나 그 아이의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듯 했다.


그러고는 얼마 안 있어 반공 연맹에서 주관하는 반공미술대회가 있었지. 나는 왠지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잘 해 보고 싶었어. 어머니께 졸랐지. “다들 36색 크레파스 빵빵한 거 쓰는데...., 나는 12색, 똥 많이 번지는 거라도 좋으니 새 거 하나 사 줘요, 네” 어머니는 큰 맘 먹고 12색 크레파스를 사 주셨고, 나는 그거 들고 대회에 나갔어. 근데 미술 실력도 부족하지, 거기다 상상력도 부족했던 내가 뭘 어떻게 한 단 말인가? 난 내 옆에서 그리고 있는 아이의 그림을 모방하며 거기다 슬쩍 내 것을 조금 첨가한 표절 혹은 모방 작품을 그려 내기에 이르렀지. 의외로 결과는 대 성공이었어. 당당히 내 그림은 입상하게 되었고, 상장을 받게 되었는데, 그 상장의 크기가 거짓말안하고, 켄트지 전지 1/2정도는 되는 거야. 둘둘 말아가지고 집에 가지고 가는데 얼마나 뿌듯하던지. 반장아이가 자꾸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 미치겠더라구. 집에서도 놀란거야. 그렇게 큰 상장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때, 나 때까지 합쳐서 처음이라는 거야. 아버지는 당장 내 손을 붙드시고 표구점으로 가셔서 커다란 액자를 해서 우리 집 한쪽 벽에 걸어주셨지. 난 지금도 그 그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비행기, 대포, 전차 등 온갖 무기를 동원해서 빨갱이-그야말로 빨간 색으로 ‘북괴군’을 그렸지-들을 묵사발 내는 그림이었어. 그러한 분노에 기반한 적개심과 자만심으로 나는 거의 고등학교 시절까지 보냈어.  


아, 그 여반장은 어떻게 됐냐구? 우리의 애타는 사연은 아직 끝난 것은 아냐. 3학년이 되면서 우리는 반이 갈리게 되었지. 나는 쉬는 시간만 되면 그 아이의 반 앞 복도를 서성이곤 했어. 그런데 이상한 거야. 한 달 두 달이 지나도록 그 아이를 마주칠 수가 없는 거야. 결국 알게 되었지. 학년이 바뀌면서 근처에 흥인국민학교(우리가 다니던 학교는 청구국민학교)가 새로 생겨 그 쪽 동네 살던 아이들은 그 학교로 다 전학을 가버렸던 거야. 아 이제 그 아이를 볼 수 없게 되었구나. 내가 그림을 잘 그리면 뭐해. 그 아이가 가버렸는데. 난 그 당시 해병대 산이라고 불리우는 산꼭대기 동네에 살고 있었어. 이른 아침마다 자꾸 잠이 깨는거야. 얼마나 많은 날을 새벽 어스름 산 언덕에 서서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 댔는지 몰라. “재준아, 재준아!”


글쎄 그 아이가 전학을 안 가서 자주 볼 수 있었으면 내 그림 솜씨가 훨씬 늘었을까? 아직도 생각나. 그 도라지 타령, 그리고 그 네모난 얼굴.


이대로 이야기는 끝이냐고? 나인(Nein).

6학년 때였을 거야. 우연히 길을 가다 그 아이를 만났어. 그 아이는 아이스크림(부라보 콘이었을까?)을 먹으며 걸어가고 있었지. 마주 걸어오던 내 눈빛에 비쳐온 그 아이의 자태는 내가 쓰러져 버릴 정도로 너무나 눈부셨어. 그래서 난 떨리는 가슴과 다리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그 아이를 겨우 스쳐 지나오고 그저 뒤돌아서서 그 아이의 뒷모습만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어.


그래서일까? 지금도 난 아이스크림을 잘 못 먹어. 아이스크림 특히 부라보콘 같은 거 하나 먹으면 너무 어지러워 쓰러질 지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