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일기 140919 합1장 '어찌하여 기도'
말씀일기 140919 합1장 '어찌하여 기도'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맑으시므로, 악을 보시고 참지 못하시며, 패역을 보고 그냥 계시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보고만 계십니까? 악한 민족이 착한 백성을 삼키어도, 조용히만 계십니까? (2-3, 13, 새번역).
생각나는 대로, 글 가는 대로 막 가보자.
하나님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 자주 침묵하시고 오래 침묵하시는 것 같다. 하박국은 "어찌하여"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도 침묵하시는 거냐고 따진다. 불의가 판칠 때, 하나님께 따져 묻는 이 '어찌하여 기도'가 그리스도인의 참된 기도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로 가는 길이다.
나의 20대는 특히 이 질문으로 가득한 삶이었다. "혀 짤린 하나님, 귀머거리 하나님"을 아픈 가슴으로 부른 적이 많았다. 그러다가 그 하나님을 뒤로 하고 세상으로 떠나간 선후배도 적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직접 하나님의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어보려고 교회라는 울타리를 용감하게 떠나갔는지도 모른다.
유약한 나는 교회를 떠나지 못했고, 지금까지 이 안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하박국이나 욥의 기도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결코 하나님을 부정하고 떠나려는 반항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정리하면서,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을 모토로 지금도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버티고 있다.
교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오늘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 분께 '어찌하여' 그러시는 거냐고 정직한 항변을 하는 그의 백성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연대 속에 하나님은 분명 함께 하실 것이다.
기승을 부리는 악, 늘 승리하는 것 같은 악으로 인하여, 부활의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함께 아파하시는 십자가의 주님이 너무 감사하다. 그렇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대 명제 앞에서 우린 누구나 믿음과 소망이 꼭 필요하다. 분명 '어찌하여 기도'는 이웃 속으로, 그리고 하나님 품으로 나아가는 구원의 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