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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7일 Facebook 이야기

유럽의 바람 2012. 3. 7. 23:59
  • 말씀일기 120306 고전4장 ‘교주와 사도의 차이’

    얼핏 보면 잘 모르지만, 조금 들여다 보면 바울은 무슨 이단 교주같이 보일 수도 있다. 왜냐 하면 몇 개의 파당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 사람들을 부드러운 듯 하나 엄하게 훈계하던 그가 이 문제 해결의 결론 부분에 와서는 결국 수 많은 스승이 있어도 아버지는 여럿 있을 수 없다 하며 자신이 고린도 성도들을 낳은 아버지이니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고 있으니(14-16), 마치 자신을 중심으로 뭉치라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분열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기가 디모데를 보낸 것인데, 그 디모데는 자신이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17)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이것도 자칫 이단 느낌일 수 있다.

    사실 앞장에서도,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와 동급으로 놓고 이야기 하는 듯 보이지만, 자신이 심은 자라는 사실 즉 복음의 기초를 놓은 자라는 사실에 은근 방점이 들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만약 내가 바울 입장이었다면, 파당 그룹 이름을 언급할 때도 ‘바울파’를 뒷 순서로 배열할 것 같은데, 왠지 바울이 직접 적은 편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로 매번 바울파 혹은 바울이라는 이름이 먼저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바울이 이단 교주가 되지 않은 중요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그 시점까지도 여전히 복음 때문에 현장에서 갖은 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객관적으로 볼 때,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다’, ‘내가 아버지다’ ‘나를 본 받도록 하라’는 표현들은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보다 더 겸손하면서도 힘 있는 다른 표현들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단 교주로 전락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복음의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 위에 온전히 서 있기 때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여전히 현장에서 복음을 위해 고난 받고 있었던 그의 치열한 삶(9-13) 때문이리라.

    배부른 교주의 오만함이 아닌, 고난 받는 사도의 당당함이 부럽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20).
  • → 손교훈 섬김을 받으려 하는 사람은 교주,섬기려 하는 사람은 우리가 본 받을 옳은 사도.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 하라...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서로 우애 하고 존경 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로마서 12,3~).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 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베드로전서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