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일기 111213 행21장 '주의 뜻'
성령의 인도하시는 방향이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다르게 인식될 수 있음을 본다. “성령에 매여”(20:22)가는 바울은 죽을 것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나,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4) 하였다. 유대에서 내려온 아가보 선지자의 퍼포먼스를 통해 “성령이 말씀하시”(11)는 것을 더욱 분명히 들은 제자들은 거듭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12)한다. 하지만 바울은 끝까지 그 “권함을 받지 아니”(14)한다.
아이러니 하지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는 제자들의 생각도 성령의 감동으로부터 온 것이고, 기어코 가겠다는 바울의 결심도 결국은 성령이 주신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그것은 어느 한 쪽이 틀렸다 라기 보다는, 다른 한쪽이 더 옳은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성령께서는 바울에게 예루살렘 행은 고난의 길임을 거듭 경고하셨지만, 그렇다고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는 결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분명 아니다. 성령은 바울에게 고난 받으라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시지 않고, 그저 그 길을 보여 주실 뿐이다. 하지만, ‘성령에 매인’ 바울은 그 고난의 길이 자신을 향한 “주의 뜻” 이라고 가슴에 새긴다. 그렇게 ‘주의 뜻’은 자신의 실존 전체를 걸고 기도하는 자에게 생생하다. 결심은 주위에서 말릴수록 더 굳세어 간다. 말리던 자들도 결국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14)를 기도하며 멈출 수 밖에.
벌써 여러 차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바울, 이제는 좀 안전하게, 조용히 지낼 만도 할텐데 끝까지 간다. 마음 속 깊이 ‘주의 뜻’을 헤아리고는, 거기에 삶의 전부를 건다. 주님과 함께, 어디든지 가겠다는 마음으로. 나 같은 자가 따라가기에는 그의 삶이 전라도 사투리로 너무도 “징혀!” 그래도, 사람으로부터가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들려 주시는 바대로 단호하게 결단하고, 그리고 그 길을 끈질기게 가는 바울은 여전히 내게 부러운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