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일기 111201 행11장 '몇 사람'
전환, 그 물결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일어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방으로 흩어져 갔지만 모두들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주 예수를 전파”했다(19-20). 언제나 역사는 한 사람 혹은 그저 몇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의 손이 이 몇 사람들과 “함께 하시매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다(21).
‘몇 사람’이 되기도 쉽지 않지만 그 몇 사람을 알아보기도 쉽지 않은 법. 그러나 성령께서는 예루살렘 교회를 사랑하시고, 베드로를 통해서 고정관념을 깨고 큰 틀을 갖게 하시고, 안디옥의 ‘몇 사람’을 알아보고 그 곳으로 사람을 보낼 수 있게 하신다. 이로 말미암아 히브리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는 어찌 보면 진정한 의미의 교회가 서게 되고, 점점 든든한 교회로 자라 가게 된다(22). 안디옥 교회의 초대 담임 목사라 할 수 있는 바나바는 자연 인격이나 신앙 인격에 있어 조화를 이룬 사람이었다(24). 또한 은둔해 있는 인재 사울을 알아보고 그를 찾아 나서고, 결국 데리고 와서 함께 사역을 한다(25-26). 나로서는 모든 것이 부러운 것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부러운 것은 그가“하나님의 은혜를”볼 줄 아는 사람(23)이었다는 것이다.
결코 녹록하지 않은 이 땅 유럽에서도 ‘몇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기를, 좁은 길을 걸으면서도 밤낮 기뻐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성령님, 나와 함께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