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7일 Facebook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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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일기 110606 막16장 “그러나 어찌하랴”
말씀일기 110606 막16장 “그러나 어찌하랴”
마가복음은 사실상 8절에서 끝이 나고, 9절 이하 20절까지의 기록은 아무래도 별개의 기록이 나중에 첨가된 듯하다. 혹은 나중이 아니더라도 별개의 기록을 마가가 함께 묶어냈을 수도 있다. 8절과 9절 이하는 아무리 읽어 봐도 단절이 심하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이 ‘별개의 기록’이 가져다 주는 논리적 단절이 한편으로는 ‘부활’사건을 대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서로 많이 다른 두 반응-‘두려움’과 ‘믿을 수 없음’을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가 되고 있다. 마가가 이것까지도 의도한 것이었을까?
막달라 마리아 등의 여인들은 안식일이 끝나는 무렵, 즉 토요일 저녁 무렵에 미리 향품을 사둔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즉 “안식 후 첫 날 매우 일찍이”(2) 무덤으로 간다. 사실상 무덤 문의 그 큰 돌을 힘센 장정 여러 명이 굴려 주지 않는다면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간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 여자인가 보다. 그리고 그 믿음, 그 사랑은 자주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번에는 너무 심했다. 그들은 못다한 장례의 도리를 할 수 있을까 해서 간 것이지, 예수께서 부활하신 소식을 천사로부터 듣고, 본인들 눈으로 ‘빈 무덤’ 현장을 목격하려고 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들었고, 보았다. 그리고 여인들은 “몹시 놀라 떨며…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8).
부활은 너무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8절과 9절의 단절은 그래서 오히려 부활을 접한 사람의 변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부활은 여인에게 너무도 놀랍게 다가왔고 두려워 입을 열 수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인은 입을 열어 그 소식을 전하고 있다. 부활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인가?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은 슬퍼하며 울고 있”(10)었으면서도, 마리아를 통해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11)였다. 또 시골로 가고 있던 다른 두 제자들이 남은 제자들에게 자신들에게 나타나신 주님 소식을 전하였지만, 역시 듣고도 “믿지 아니” 했다(13). 결국 주님께서는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역시 밥 먹을 때가 중요한 거 맞다-직접 찾아오시고, 꾸짖으신다.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하는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14).
그런데, 그렇게 주님께 꾸중을 들어야 했던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20)했다. 두려워 떨던 여인들이 결국은 입을 열어 소식을 전했고, 지독히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이 결국은 세상 곳곳에 복음을 전파했다.
믿는다는 것, 특히 ‘예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여인들처럼 ‘두려움’일 수 있고, 제자들처럼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 예수께서 벌써 내 안에 살아계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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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교훈 사람 으로서 헤아리기 힘든 하나님의뜻!마지막 순간에도 부활을 믿으며 행복한?죽음을 맞는 행악자,(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 23,43)주님!우리도 생각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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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교훈 그러네! 페북에 빠져 있다가 창 밖을 보니 서둘러 온 밤이 내려앉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