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일기 110603 막14장 “먹을 때에”
‘식탁의 영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먹는 자리야말로 역사가 일어나는 소중한 자리인 것을.“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3),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부었다. 주님은 유월절 음식을 열두 제자와 함께 “다 앉아 먹을 때에”(18), 그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먹을 때에”(22), 주님은 두고두고 기억될 ‘주의 만찬’을 베푸셨다. 나중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주님의 부활을 깨닫는 것도 바로 식탁에서였다. 헌신도, 경고도, 성례도, 깨달음도 다 ‘먹을 때’ 일어났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한 여자”는 아마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 식탁에 자기 자리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빵 한 조각, 혹은 수프 한 그릇도 제대로 먹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분을 위해 기쁨으로 자신을 드리며 그 어느 사람들보다도 배부른 사람이었다. 반면, 향유를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어야 했다며 여인을 책망하던 사람들은, 주님과 식탁에 함께 있을 뿐이지 정작 먹어야 할 것을 먹지 못해 실상은 배고픈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 중 한 사람은 예수를 대제사장들에게 넘겨 주려고 기회를 엿 보는 중에 유월절 만찬에 참여하여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18)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 때 그는 배불렀을까? 그는 결국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행1:18)와, 주님과 다시는 식탁을 함께 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배고픈 사람이 되었다.
제자들은 주님과의 마지막 식사 자리의 그 비장함을 왜 그렇게도 못 느끼고 있는 걸까? 도대체 그들이 감람산으로 가며 부른 “찬미”(26)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참 분위기 파악 못하는 ‘낭만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다시 눌러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나를 부인하리라”(27, 30). 하지만 제자들은 너무도 쉽게 대답한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1). 육체의 포만감과 헛된 자신감으로 배가 불렀나? 그래서 그날 밤, 겟세마네에서 심히 마음 아파하시는 주님과 단 한 시간도 함께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나?
주여, 먹을 때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내 영혼의 식탁에 오셔서, 말씀하옵소서. 깨닫게 하소서. 우리 가족 식탁에 오셔서,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 우리 안에 찬양과 기도의 향내가 나게 하소서. 오늘 식사 자리가 그 옛날 제자들이 둘러 앉았던 마지막 식탁일 수 있음을 알고, 겸손과 감사로 식탁을 대하게 하소서. 헛된 것에 배부르지 않게 하소서. 우리 인생 식탁의 참된 빵과 음료가 되어 주신 주님의 사랑의 신비에 늘 감격하게 하소서. 설사 오늘 밤 가장 배고픈 인생으로 눈물의 광야를 헤맨다 하더라도 내일 주께서 차려주신 조반을 먹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