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일기 110308 마7장 “들었는데 왜”
말씀일기 110308 마7장 “들었는데 왜”
24절의 “그러므로”는 무엇에 걸리는 것일까? 일차적으로는 21-23절까지의 말씀에 연결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좀 더 크게 보고 싶다. 그렇다면 ‘그러므로’는 5장부터 계속되어 온 예수님의 산상수훈 전체를 걸어 마무리하는 접속사가 된다. 주님은 지금까지 수 많은 가르침을 들려주셨는데, 바로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24)다고 결론 내려 주신 것이다. 쉬운 말로, “좋은 말 들었으면, 그대로 사세요”인 것이다.
예전에 독일어 학원을 다닐 때였다. 어느 날 나는 한숨을 쉬며 “에이, 선생님이 칠판에 써 주거나 책을 보여 주면 잘 말할 수 있는데…”라고 투덜거렸는데, 그 때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가 나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한 마디를 던졌다. “너는 들었는데, 왜 말할 수 없니?” 무심결에 던진 그의 말은 진리였다. “기초는 ‘읽고 쓰기’가 아니라 ‘듣고 말하기’란다.” 친구를 통해 들려주신 주님의 음성이었다.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 그것이 기초요 반석이요, 바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다. 심지어 조금 잘 못 들었다 하더라도 그 들은 말씀대로 소리 내보고 행동해 보는 것, 그것이 인생의 기초요 믿음의 반석인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몸짓에도 진리가 있다. 아이는 ‘읽고 쓰기’로 그의 인생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듣고 말하기’로 그 인생의 기초를 다져 나가지 않는가. 나를 향한 주님의 산상수훈이 자칫하면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허공을 떠돌 수도 있다. 그래서 비슷한 말씀이 누가복음에 ‘평지수훈’으로 기록되고 있음에 또 감사해야 하나보다.
나, 말씀 듣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게 기초고 반석이다. 떠듬거려도 말해야 하고, 뒤뚱거려도 걸어가야 한다. 너무 엄청난 말씀들이지만, 적어도 내가 말씀을 들었다면 왜 말할 수 없으며 왜 그렇게 살 수 없는가. ‘작은 실천’이 바로 내 믿음의 집을 세워가는 생기초인 것을 다시 확인하며, 내 “눈 속에 있는 들보”(3)를 바라다 본다. 거룩한 것, 진주를 발로 밟고 돌이켜, 주님을 찢어 상하게 하는 개나 돼지가 되지 않기를(6),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기를(21)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