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일기 110226 창49장 “각 사람의 분량대로”
말씀일기 110226 창49장 “각 사람의 분량대로”
오늘 말씀에는 야곱이 축복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자식이라도 듣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 꽤 있다.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4),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5),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7),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15) 등등.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물론 이것은 이미 “열두 지파”(28)로 형성이 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거꾸로 야곱을 이해하고 야곱을 통해 축복하신 하나님을 이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이 반영된 것이다. 분명 유다 지파에서 나온 다윗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리라. 그렇다고 이 말씀이 그저 지파 중에 ‘유다 지파의 우선성’(8-12)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으로만 이해되지는 않는다.
성경은 그럼 또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는 축복한다는 것이 그저 막연하게 “복받아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야곱은 자식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28)했다. 그렇기에 그 축복은 구체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축복은 마땅히 그런 것이리라.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서 결코 막연히 기도하고 축복하지 않는다. 축복은 아들 전체 즉 공동체를 향하여 주어진 것이지만, 또한 각 개인에게 구체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가족이든, 성도든, 이웃이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나는 다시 깨닫는다.
축복의 구체성과 함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 ‘미래성’이다. 오늘 야곱의 축복은 ‘예언적 성격을 지닌 유언’이었다. 축복은 ‘다 이루어졌다’도 아니지만, ‘앞으로 다 잘 될 것이다’도 아님을 보여준다. 복을 빌어준다고 하는 것은, 그 미래를 말해 준다는 뜻이다. 점을 친다는 뜻이 아니라, 미래에 그를 통해 펼쳐가실 하나님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이다. “불투명한 미래 속에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너와 함께 하신다.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바로 당신 인생의 주인이시다. 당신 인생을 이끌어 오셨고 또 이끌어 가실 하나님을 바라보라.” 이렇게 말해 주는 것이 축복의 중요한 한 요소일 것이다.
야곱이 믿음의 사람인 것을 단적으로 ‘그의 축복’에서 찾아내고 있는 히브리서 기자의 통찰은(히11:21) 뛰어나면서도 정당한 것 같다. 야곱은 자식들을 하나 하나 축복하는 중에 잠깐 숨을 돌리며 이렇게 기도하지 않는가.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18). 하나 하나 자식을 축복하는 중에 힘에 겨워 숨을 몰아 쉬며 이제 곧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 드리는 야곱의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죽음 이 후에도 계속해서 펼쳐져 갈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야곱의 믿음을 볼 수 있어야 하리라. 축복의 사람 야곱은 그렇게 믿음으로 주의 구원을 기다리며, 단정하고 신실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했다(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