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일기 110126 창22장 “부자의 동행”
말씀일기 110126 창22장 “부자의 동행”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6).
인생 늘그막에 힘겹게 얻어 눈물겹게 키워가고 있는 아들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 시험을 이기는 담대한 믿음이라고 한 마디로 말하기에는 거기에 담긴 말로 다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먼저 읽어야 하리라. 모리아산을 향한 사흘 길, 그리고 마지막 날, 종들을 남겨두고 두 부자만이 함께 걸어 오르는 모리아산. 이번 산행이 그 어느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임을 감지한 아들은 한참 산을 오르던 중 조용히 입을 연다. “아버지…!” 아버지도 나즈막하지만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한다. “아들아, 내가 여기 있다.” 아들이 묻는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7) 아버지는 대답한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
아버지는 “네가 바로 그 제물이란다”라고 가볍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너는 아니니까 걱정 마라. 너는 막판까지 그저 시늉이요 흉내일 뿐이요, 제물은 이미 따로 다 준비되어있단다”라고 더 가볍게 말하지도 않는다. 비감한 마음으로 산을 오르는 아버지는 아들의 난감한 질문을 피해가듯, 둘러대듯이 그러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게 대답해 준다. “여호와 이레”(하나님이 준비하신다). 아들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두 부자는 그렇게 말없이 산 길을 오른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함께 모리아산을 오르는 이 장면을 “부자의 동행”이라는 제목으로 단편소설을 써 보았으면 한다. 허나 내가 실력이 안되니, 영성과 예술적 감각을 겸비한 그 누군가가 반드시 써 주었으면 좋겠다. 벌써 영감서린 작품이 나와 있으려나? 폰 라드가 말했듯이 모리아산은 ‘구약의 골고다’이다. 그렇다. 모리아산 언덕을 오르는 아브라함-이삭 부자의 모습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과 아들을 따라 함께 걷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모리아산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순종하는 아들 예수님의 마음을 더 읽게 된다.
물론 나는 아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싶은 아버지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처럼 아들을 제물로 삼고 싶지는 않고, 삼을 수도 없는 아버지 아닐까? 아들을 속죄제물로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내게는 아들과 함께 모리아산을 오르는 시험을 주시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믿음의 얄팍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