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일기

말씀일기 110104 창3장 “네가 어디 있느냐”

유럽의 바람 2011. 1. 5. 02:08

말씀일기 110104 창3장 “네가 어디 있느냐”

 

사람이 하나님일 수 없는 두 가지 한계가 오늘 말씀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선악을 판단하는 일’과 ‘영원히 사는 것’이다. 간단한 단어로 요약하면, 사람의 궁극적 한계는 ‘지혜’와 ‘영생’이다. 뱀이 여자를 유혹하며 던졌던 말은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선악과 열매를 따 먹은 아담과 그의 아내는 “눈이 밝아”(7)졌고,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22).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피조물의 한계를 명확히 해주실 필요가 있으셨다. 사람이 ‘지혜’에다가 ‘영생’까지 가져가게 되면 하나님은 설 자리가 없게 되실 게 분명했다. 그것만은 막으셔야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 까 하노라 하시고”(22)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다. 그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근원이요 결국 그리로 돌아가야 할 “‘땅’을 갈게 하”(23)신다.

 

‘지혜’와 ‘영생’, 그 한계 앞에 겸허해질 수만 있다면 사람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텐데, 그게 잘 안 된다는 것 아닌가. 지혜로워보였던 사람은 실상 과장하기 좋아하는 뻥튀기의 명수였고(3“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하셨느니라”),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얄팍한 존재였으며(6, “여자가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탐스럽기도 한”), 스스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핑계꾼들이었다(12 “하나님이 주...신 여자 그가”, 13 “뱀이 나를 꾀므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사람은 결국 ‘지혜’도 ‘영생’도 얻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

 

내 안에 쓴 뿌리로 자리하고 있는 ‘아담과 하와’를 인정하는 길 만이 그걸 꼭 구원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최소한 ‘사람’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 땅에 살아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내려놓아야 하고, 내가 다 알고 있다고 하는 교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엄청난 일까지 가지 않더라도, 내 안에 있는 뻥튀기, 내 안에 있는 얄팍함, 내 안에 있는 핑계와 회피, 이것들을 보며 주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하리라. 내 안에 오늘도 꿈틀거리는 뱀의 존재를 겸허히 고백하고, “네가 어디 있느냐”(9) 부르시고 찾으시는 아버지 앞에 무릎 꿇어야 하리라.

 

풀잎조차 가죽옷으로 바꾸어 입혀주시는(21) 사랑의 아버지! 아버지 앞에 여기 이렇게 엎드립니다.